요즘 미각 장애와 음식 중독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한다. 행복이 가득해야 할 음식 문화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문제니 그냥 넘어갈 순 없는 사실이다. 혀는 우리 몸의 경비병이란 말이 있다. 경비병이 열심히 근무를 서야 몸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 빨리 변해서 경비병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음식 중독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미각 장애는 왜 생기는 것인지 알아보자.

설탕, 소금, 지방 복합물 중독
단맛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우리 뇌의 보상 중추라는 곳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금을 추가하면 대비 효과 때문에 단맛이 훨씬 강해진다. 물론 짠맛 자체도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맛이다. 여기에 지방을 섞으면 많이 씹지 않아도 음식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입에서 살살 녹는 음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맛은 있는데 건강에 안 좋다는 음식에는 대부분 이 세 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다. 도넛, 치킨, 프렌치프라이, 라면 같은 튀긴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이 인기 있는 이유다. 「과식의 종말」(데이비드 A, 케슬러)이라는 책에 따르면 실험실에서 쥐에게 설탕, 소금, 지방 복합물을 줬더니, 바닥에 전기가 흘러도 먹으러 가는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이 복합물은 열량은 높고 다른 영양소는 부족해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되지만, 이렇게 강력한 중독성 때문에 식품 업체들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음식은 의지력만으로 절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저자인 데이비드 케슬러 박사는 사회적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한때는 멋과 낭만의 상징이었던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유독물질로 추락했듯이, 중독을 유발하는 음식 역시 맛의 상징이 아닌 혐오 물질로 취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감칠맛 중독
넣자니 꺼림칙하고 안 넣으면 맛이 없는 MSG로 대표되는 감칠맛 조미료는 한국인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MSG는 사탕수수 부산물인 당밀을 발효해 글루탐산을 만든 다음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결합해 만든다. 그 자체가 유해한 성분은 아니다. 감칠맛 조미료의 진짜 문제는 감칠맛을 지나치게 많이 낸다는 점이다. 육수 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도 감칠맛을 내니,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요식업계에서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음식, 특히 외식 메뉴는 감칠맛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렇게 맛이 너무 강한 음식을 자주 먹으면 미각이 무뎌지고 먹는 양도 늘어난다. 미각 검사에서 감칠맛에 둔감하다고 나온 사람은 비만 확률이 높다고 한다.
매운맛 중독
한국 음식의 대표 주자가 김치와 고추장일 정도로 한국인의 매운 음식 사랑은 특별하다. 한국에 와서 매운 음식을 먹고 기겁하는 외국인도 많다. ‘맛있게 맵다’라는 독특한 표현도 있지만,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미뢰가 느끼는 맛이 아니라 입안을 찌르는 고통스러운 감각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물은 고추를 먹지 않지만, 매운맛을 못 느끼는 새들은 예외라고 한다. 덕분에 새들이 아주 먼 곳까지 씨를 뿌려 준다.
우리 몸은 고통을 느끼면 이를 없애려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순간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엄청 매운 음식을 먹고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자극을 계속 받으면 우리 몸이 거기에 적응해서, 같은 효과를 보려면 더 강한 자극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점점 더 매운 음식을 자주 찾게 되고, 결국 혀와 위장이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또 매운맛은 미각을 둔하게 해 다른 맛을 잘 못 느끼게 한다. 그래서 매운 음식은 대부분 단맛과 짠맛 같은 다른 맛도 상당히 강하다. 기본 맛이 주는 쾌감에 통증을 줄이는 엔도르핀까지 나오니 당연히 중독성이 높다. 롤러코스터는 가끔 타야 스트레스가 풀리듯, 매운 음식도 특별할 때 한 번씩 먹어 기분 전환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게 좋다.
카페인 중독
카페인이 많은 에너지 음료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에너지’라는 이름 때문에 마시면 힘이 나고 피로도 사라질 것 같아서 직장인과 수험생들이 애용한다. 실제로 카페인은 적당히 마시면 이런 효과를 발휘한다. 옛날 에티오피아에서 한 목동이 기르던 염소가 어떤 열매를 먹자 마구 날뛰었다고 한다. 목동이 먹어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정신 수행을 도와주는 신비의 열매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열매가 바로 커피이다. 커피에 든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자극해서 각성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카페인의 진짜 효과는 피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뇌가 스트레스를 받아 민감해지는 것이다. 나중에는 더 피곤하게 되는데, 이 피로를 다시 카페인으로 해결하는 습관이 바로 중독의 시작이다. 특히 청소년은 카페인에 더 민감해서, 미국 일부 주에서는 18세 미만에게 에너지 음료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아본 음식 중독에는 비슷한 특징이 있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현대 음식 산업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낼 수 없는 수준의 맛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음료에는 단맛의 결정체인 액상 과당을 넣고, 고추 대신 고추에서 추출한 캅사이신 원액을 넣어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 음식을 만드는 식이다. 미각 장애가 늘어나는 이유도 이렇게 자연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맛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중한 미각을 보호하고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심심한 맛을 즐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살다 숲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심심하지만, 그 심심함에 익숙해지면 작은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게 된다. 맛의 세계도 마찬가지여서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 재 중심의 식사는 처음에는 무미건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섬세한 맛의 조화 속에서 더 큰 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출처: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박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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